- 작성시간 : 2014/05/05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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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테고리 : cinema show talk

역린을 보았다.
같이 본 지인은 '제작비를 많이 쓴 다모'라고 평했다. 나는 다모를 단 1초도 본 적이 없어서 고개만 끄덕끄덕했고, 곧 폭풍같이 영화를 까기 시작했다. 맑았던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가득 끼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정말... 이 영화의 단점을 나열하려면 한참 걸리겠지만, 가장 치명적인 점을 고르라고 한다면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이재규 감독이 관객들을 초등학교 3학년 정도로 생각하고 만든 영화라는 점이다.
현재 지구상의 대부분의 영화 감독들에게 크리스토퍼 놀란, 폴 그린그래스, 리들리 스콧 뭐 이런 감독들의 영향력은 그들 생각보다 훨씬 클 것이다. 그럼 뭐라도 배운 게 있을 것이 아닌가? 특히나 놀란 감독은 관객들을 존중하는 영화를 만든다. 당신들의 뛰어난 지성으로 저의 영화를 봐주시면 고맙겠어요. 간만에 머리를 좀 써주세요,라는 느낌의 영화를 만들어주는 점에 나는 아주 감사하고 있다.
정조 암살이라는 매력적인 소재에, 이렇게나 뛰어난 배우들을 가지고 어떻게 이렇게 안일하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지 그게 더 신기할 따름이다.
역린을 보면서 생각한 몇 가지 의문점들.
*시나리오는 발로 썼나?
대본을 누가 썼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이 영화에 캐스팅된 배우라면 시나리오를 읽다가 기가 막혀서 코웃음을 쳤을 듯. 시나리오 작업하는데 한 2시간 걸린 듯 싶다. 몇 개월 동안 고생고생해서 썼다면 그게 더 문제고. 제작자들은 초등학생 마인드인가? 아니 어떻게 2014년에 이런 대사와 플롯으로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그걸로 영화를 찍을 수가 있지?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놀란 감독까지 갈 필요도 없다.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적어도 [혈의 누] 정도의 분위기와 고증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 해지뫄!
1. 회상씬 넣지뫄!! 해지뫄!!!
아역들이 나오는 회상씬은 굳이 넣을 필요가 없었는데... 그걸 넣어서 무슨 감정을 쌓길 바랐는지 역시 이해를 못 하겠군. 뭐 특별히 중요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말야. 등장인물 간의 끈끈한 정을 묘사하고 싶었다면, 그냥 현재 상황에서 표현해주면 될 일이다. 그리고 정재영과 조정석이 일종의 형제 관계라는 설정은 없어도 되었다고 본다.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
약 하루 정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길래 오오 24같은 느낌인건가? 아주 긴박한 스릴러 느낌의!! 하고 기대했는데, 회상씬이 나오는 순간부터 패닉 상태에 빠졌고 몇몇 장면에서는 차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아니야, 이건 꿈이야 ㅠㅜ
2. "형...!! 동생아...!!!" 해지뫄!!! 해지뫄!!!!! 조정석과 정재영이 설마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설마!! 서로 알아보고 눈물을 흘리며 얼싸안고 어쩌고 하다가 결국 같이 피눈물을 흘리며 죽고 이런 건 아니겠지? 지금은 2014년이야!! 그, 그럴리가 없어!!!라고 초반에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3, 해지뫄!! 연애질 해지뫄!!! "여자를 건들면... 죽이겠다" 이게 뭐여 지금 장난해? 이때부터 '시나리오 발로 집필'이라는 이론이 본격적으로 시작됨.
* 한지민의 컨셉은 양귀비인가?
처음에 그녀가 대사하는 목소리를 듣고, 마시던 사이다를 뿜을 뻔했다. 그리고 그 손!은 뭐야 개야? 못된 여자를 표현하기 위해 교태 가득한 표독한 눈빛에 간드러진 목소리로 연기하는 톤을 잡은 거 같은데 완전히 판단 미스였다. 캐스팅이 문제가 아니라, 겨우 그 정도 수준으로 캐릭터를 잡고(이건 연기를 한번도 배워본 적이 없는 나도 제일 처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캐릭터다!) 그걸 감독이 오케이했다는 것이 진짜 문제임. 어쩌면 감독이 한지민의 안티일지도... 지민씨 잘 생각해봐요. 뭐 잘못한거 없나.
아니 한지민이 이렇게 연기를 발로 하는 배우였나?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한지민의 작품을 제대로 본 적은 없군. 원래 못하는 건데 내가 이번에 알게 된건지, 잘하는데 역린에서 삽질을 한 건지는 모르겠다. 누가 좀 알려주세요.
* 고증이라는 단어를 모르나?
감독이 다른 사극을 안 봤나? 자기 것만 해서 모르나? 이건 뭐 어쩌라는 건지... 현대적인 표현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대사를 그렇게 썼다고 한다면, 그건 그냥 귀찮아서 대충 썼어요,라는 의미로 읽힌다. 대충 만들어도 정도가 있지, 뭐하는 짓이야? 이 글을 쓰면서 갑자기 또 분노가 치민다. 조선 배경의 영화들만 쭉 봐도 정말 민망해서 이렇게 대사는 못 쓸 거 같다. 아니 그리고 임금이 왔는데 말에서 안 내려? 어명을 막 그냥 받어? 불렀는데 안 와?? 무슨 설정을 이렇게 잡았어? 이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내가 뭘 모르는 건가? 아니 회사 부장님이 들어와도 벌떡 일어나는데 말야. 당장 유부장님을 보라고!! 의문점은 점점 많아진다...
* 조정석은 결국 젓가락질만?
조선 최대의 살수라는데, 인상깊었던 건 역시 젓가락질. 우리 모두 젓가락질을 열심히..
* 송영창은 그렇게 쉬운 남자였나?
너무 쉽게 넘어갔다. 끝까지 발악하다가 현빈에게 모두 다 죽임을 당할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깊이를 보여줬던 캐릭터라면 이해를 하겠는데, 이건 뭐 깐죽대면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가 갑자기 충성을 보여주니 황당해서 크헝, 하고 웃어버림.
* 내가 지금 교훈을 얻자고 이 영화를 보고 앉았나?
[광해] 때문에 그런가 자꾸 관객들을 가르치려고 든다. 이봐요, 누가 몰라? 내가 지금 그걸 몰라서 영화보러 왔냐고. 아놔 진짜... 그런건 구구절절 말로 표현하는게 아니라, 인물의 행동과 성격과 극중의 사건으로 묘사하는 거라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엄청난 깨달음을 준단 말입니다.
그나마 나았던 점.
현빈과 그의 의상. 임금님 옷은 참 정갈하니 매력적이더구만. 의상 하나는 괜찮았다. 그리고 무관들이 입는 허리 꽉 조이는 까만 군복 그거 너무 섹시함. 핡...
현빈 연기가 별로라고 해서 기대를 안하고 봐서 그런가, 그가 표현한 정조는 의외로 꽤 괜찮았다. 물론 그가 핸섬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ㅋ
역시 조재현, 정재영, 송영창, 김성령, 박성웅. 그래도 이 영화 살려보겠다고 독기를 품고 연기한 게 아주 잘 보였다. 감사합니다. 제 2시간을 그나마 즐겁게 만들어주셨어요. 앞으로도 영화 많이 많이 출연해주세요. 제대로 된 시나리오라면 더더욱 꼭 출연해주세요.
약간 아쉬운 조정석. 아주 매력적인 배우라 기대가 많았는데, 연기가 부족하다기 보다는 시나리오 때문에 캐릭터가 아주 애매해진 것 같다. 그니까 쓸데없는 애정씬 넣지 말라고! 씬 낭비하지 말란 말이다!!
영화 후반부의 액션씬도 나쁘지 않았는데, 지인에 의하면 [다모]랑 똑같다고... 스케일만 좀 커진 다모.
"그거 막 지붕에 붙어있고 이런 거 다모에 다 나왔어!" 음 그렇구나...
그래도 현빈이 활쏘는 장면은 긴박했다. 와 각도나오대...
사실 더 많이 얘기했는데, 지금 생각이 정리가 안 되어서 막 뒤죽박죽으로 썼다. 한참 귀찮아서 이글루스 영화 포스팅 안하고 있었는데, 이 새벽에 소주 1병 반 마시고 글 올리게 만드는 역린.
그래도 임금님 의상은 좋았어요. 활쏘기 경연할 때 입었던 블랙 앤 화이트 이뻤어요. 아직도 기억나네요. 역시 남자는 허리가 강조되는 옷을 입어야 태가 나더군요. 덕분에 2시간 동안 눈호강했습니다. 의상팀과 남자 배우들에게 깊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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